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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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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이 주는 유익을 누리자

Martin 님께서 2015-03-01 08:48, 3743 hits

교회력은 성탄절을 앞두고 4주간을 보내는 대강절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탄생, 그분의 사역, 수난, 죽음,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과 같은 예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절기가 펼쳐진다. 교회력의 목적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리듬 속에서 살도록 돕는 것이다.

교회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6개월은 12월의 대강절(대림절·강림절)부터 성탄절·현현절(주현절·공현절)·사순절·부활절·오순절·성령강림절·삼위일체주일로 이어진다. 또한 성령강림절 이후의 주일은 ‘삼위일체주일 후 몇째 주일’과 같은 식으로 불린다. 삼위일체 주일이 지나면 교회력의 후반부가 시작되며 다음 대강절까지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훈련과 성장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평상 주일(Ordinary Time)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교회력에 따른 각각의 절기와 기간들 중 교회는 전통적으로 네 가지 상징적인 색을 사용한다. 첫 번째, 보라색은 대강절 기간에 오실 왕의 위엄을 상징하며, 수난절 기간에는 고난과 회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흰색은 성결을 나타내며 성탄절과 부활절, 삼위일체 주일에서는 기쁨과 빛 그리고 즐거움을 상징한다. 세 번째로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하기에 수난 주일에 쓰이지만 성령강림주일에는 성령의 불을 상징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녹색은 삼위일체주일, 오순절부터 다음 대강절까지 교회력의 후반부에 사용되며 영적인 성장을 뜻한다.

목사님이 가운 위에 걸치신 스톨(stoll)의 색깔이 달라지고 있다면 교회력에 따른 것이리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색색의 천이나 초를 이용하여 교회 절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초기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하나씩 자리 잡으며 발전했던 이 교회력과 그에 따른 예배 전통은 종교개혁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통을 남용하고 형식주의에 사로잡힌 것에 반대․거부하는 분위기로 인해 무시되거나 대폭 축소되었다. 이제 대부분의 개신교인에게 익숙한 교회력의 절기는 고작 부활절, 성탄절 정도다.

하지만 교회가 절기를 지키지 않는 것은 교회의 전통에 대한 신학적 입장과 이해의 차이 때문이기보다는, 교회가 주변을 둘러 싼 사회 분위기와 교회 스스로가 설정한 박자를 따르고 있어서가 아닐까.

예수의 이야기를 따라 배치되어 있는 교회력과 절기들보다는 대입 시험, 교회 건축, 총동원 전도주일 등과 같은 그때그때의 상황과 필요에 따른 기도회나 특별 집회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금의 분위기가 그 증거는 아닌가. 깊은 고민 없이 만들어져 알록달록 화려하기만 한 대형 배너와 스크린에 투영된 이미지 파일이 교회력과 각각의 의미를 상징하는 색을 대신해서 예배 공간을 채우고 있는 상황이 교회 스스로 예배를 가볍게 만들고 있음을 드러낸다면 지나친 말일까.

오늘날 소홀히 여기고 있는 교회력을 돌아본 이유가 여러 가지 있다.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유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교회력은 리듬을 제공한다. 예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나라의 리듬이다. 이 리듬을 따라 예배하는 것은 나의 상황이나 예배하는 이들의 상황보다 우리가 예배해야 할 더 크고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교회력은 하나님나라의 리듬에 맞춰 예배하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돕는다. 교회력을 따라 예배하는 것은 예배 공동체가 함께하는 공동의 영성 훈련과 같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신앙을 사유화하고 자신의 만족에 따라 예배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려는 태도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다.

둘째, 교회력은 공동의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이라는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출애굽의 역사적 경험과 그 이야기들을 새롭게 기억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디에 있든지 매년 유월절을 지키는 것을 통해 그들을 구속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며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했다. 교회력에 따라 예배하는 것은 교회와 예배 공동체가 다른 환경과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 정체성의 범위가 내가 속한 예배 공동체를 넘어 더 큰 우주적인 교회의 일원임을 기억하게 해 준다. 하나님나라는 나와 내 교회보다 크다.

셋째, 교회력은 예배와 삶을 이어주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예배에 대한 진정한 고민은 겉으로 보이는 예배의 스타일과 음악적인 언어가 아니라 그 예배 경험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서 드러날 것이다. 도대체 주일의 예배 경험과 나머지 6일의 일상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라는 바울의 권고는 예배의 자리를 주일, 예배당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이고 그 안에서 온전한 뜻을 깨달을 수 있다. 교회력은 예수를 통해 펼쳐지는 하나님나라의 이야기를 우리의 몸으로, 삶 속으로 더 깊숙이 가지고 들어오는 유익이 있다.

2010년 한 해의 달력을 펴고 교회력에 따른 절기들부터 표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 리듬에 맞춰서 예배하면 좋겠다. 형식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유행에 따라, 우리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예배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나라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리듬에 우리 몸을 싣자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리듬, 좋지 아니한가.

(출처:김성한 / 한국 IVF MEDIA 총무)

Last edited by Martin (2015-03-0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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